2022.10.27 - [마음공부] - 부처님의 생애 / 제9장 평화와 평등의 가르침 (4) .. 똥통을 지던 니디
부처님의 생애 / 제9장 평화와 평등의 가르침 (4) .. 똥통을 지던 니디
2022.10.26 - [마음공부] - 부처님의 생애 / 제9장 평화와 평등의 가르침 (3) .. 살인자 앙굴리말라 부처님의 생애 / 제9장 평화와 평등의 가르침 (3) .. 살인자 앙굴리말라 2022.10.26 - [마음공부] - 부처님
blog.sun-flower.co.kr
부처님의 생애
제9장 평화와 평등의 가르침 (5)
누더기를 걸친 마하깟사빠
보다 많은 이들에게 진리를 보여주기 위해 걸음을 멈추지 않던 부처님은
아난다를 상수시자로 정하신 이후 정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깨달음을 이루신 지 27년,
그 후 16년 동안 부처님은 매년 우기를 사왓티에서 보내셨고,
기원정사와 동원정사에서 부처님이 머무는 향실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사왓티 기원정사 향실에서 비구들에게 에워싸여 법을 설하고 계실 때였다.
다듬지 않은 긴 머리카락에 하얀 수염을 깎지 않은 채
부처님의 향실로 들어서는 한 수행자가 있었다.
낡고 해진 그의 누더기는 오랫동안 세탁하지 않아 악취가 풍겼다.
일찍이 부처님께 귀의해 진리를 체득하고 라자가하 깊은 산속에 은거했던 그는 마하깟사빠였다.
사왓티에서 그를 아는 비구는 많지 않았다.
교만을 잠재우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물려받은 분소의를 걸치고
평생을 인적이 드문 숲과 들에서 지내며 걸식한 음식만으로 살았다.
언젠가 거친 바위산을 내려와 라자가하 거리를 거닐며 걸식할 때였다.
상처와 고름을 더러운 천으로 가린 한 나병 환자가 양지바른 곳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그는 마하깟사빠를 보자 깨어진 자신의 발우를 내밀었다.
“이보시오, 이거라도 좀 드리겠소.”
마하깟사빠는 공손히 다가가 합장하였다.
나병 환자는 환한 웃음을 보이며 자신의 밥을 한웅큼 집어 마하깟사빠의 발우에 담아주었다.
그때 시커멓게 썩어가던 그의 손가락이 음식과 함께 뚝 떨어졌다.
“시주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거리를 벗어나 한적한 우물가에 자리한 마하깟사빠는 발우에서 손가락을 가려내고 그 밥을 먹었다.
마하깟사빠는 밥을 먹으면서도, 밥을 먹고 난 뒤에도 혐오스럽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았다.
주어진 음식, 잠자리, 주어진 옷에 만족하며 늘 겸손하고, 소박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살았다.
‘볼품없는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누군데 함부로 향실로 들어오는 걸까?’
거침없이 다가오는 마하깟사빠를 보고 비구들은 코를 감아쥐며 웅성거렸다.
“어서 오시게, 마하깟사빠.”
부처님은 자리의 반을 비우며 손짓하셨다.
“마하깟사빠, 여기로 와 앉아라.”
비구들은 깜짝 놀랐다.
부처님께서 자리를 권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보통 비구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그대를 궁금해 하는구나.”
마하깟사빠는 부처님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합장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당신의 제자이고 세존께서는 저의 스승이십니다.”
부처님은 밝게 웃으셨다.
“그렇다, 마하깟사빠. 나는 그대의 스승이고 그대는 나의 제자이다.”
저렇게 볼품없고 더럽기 짝이 없는 늙은이에게 당신의 자리 반을 내어주며 반기다니,
게다가 ‘나의 제자다’라며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다니, 비구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휘둥그런 눈으로 당황해 하는 비구들에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4선(禪, 8정(定), 4무량심(無量心), 3명(明), 6통(通)을 완전히 갖춰 밤낮없이 항상 그곳에 머문다.
마하깟사빠 역시 4선, 8정, 4무량심, 3명, 6통을 완전히 갖춰 밤낮없이 항상 그곳에 머문다.
마하깟사빠의 수행과 공덕과 지혜는 나 여래와 더불어 조금도 다르지 않다.”
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 역시 대중 앞에서 마하깟사빠의 지혜와 공덕을 찬탄하였다.
“부처님의 첫 번째 상속자 마하깟사빠께 예배하십시오.”
그러나 상냥한 인사는커녕 좀처럼 눈길도 주지 않는 괴상한 제자의 출현에
사왓티 비구들은 오랫동안 수군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동원정사에 머물던 마하깟사빠가 기원정사 향실로 부처님을 찾아왔다.
부처님은 가까이 오라 손짓하고, 무릎을 닿을 만큼 다가선 늙은 제자의 옷을 매만지셨다.
그리고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그대도 이젠 늙었다.
거친 숲과 바위틈에서 살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구나.
이 누더기도 너무 무겁고,
그대도 이젠 나처럼 정사에서 지내며, 나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옷을 입도록 하라.”
“세존이시여, 제자는 오랫동안 두타행(頭陀行)을 익혀왔고, 많은 이들에게 두타행을 찬탄해 왔습니다.”
마하깟사빠의 정중한 거절에 부처님은 잠시 말씀을 잊으셨다.
“무슨 이익이 있기에 두타행을 고집하는가?”
“세존이시여, 두 가지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분소의를 기워 입고, 아란야에서 앉고 누우며, 걸식으로 살아가면서
저는 고요하고 안락한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이익입니다.
세존이시여, 먼 훗날 지난날을 회상하는 이들이
‘과거 부처님 제자들은 분소의를 입고 아란야에서 지내며 걸식으로 살아갔다’고 떠올린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그런 말을 듣는 사람도 모두 환희심을 일으키며 수행에 더욱 정진할 것입니다.
이것은 두 번째 이익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두 가지 이익 때문에 저는 두타행을 실천하고,
두타행을 많은 사람 앞에서 찬탄합니다.”
부처님은 크게 칭찬하셨다.
“훌륭하구나, 마하깟사빠. 훌륭하구나,
마하깟사빠. 만일 두타행을 비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곧 여래를 비방하는 자이며,
두타행을 찬탄하는 사람 이 있다면 그는 곧 여래를 찬탄하는 자이다.”
시체를 태우는 막대기들
삼보에 귀의하옵고 출가한 이들이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들 가운데는 과거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승가에 들어와 여전히 잘못된 습성대로 사는 자들도 있었다.
띳사는 부처님의 고모인 아미따의 아들이었다.
인사를 받기만 하고 살아온 그는 출가하고도 인사하는 법이 없었다.
늘 좋은 방,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멀리서 비구들이 찾아와도 나아가 맞이할 줄을 몰랐다.
법랍이 높은 한 비구가 그런 띳사를 꾸짖었다.
그러자 띳사가 고함을 쳤다.
“나는 대지의 주인이고 왕의 혈통이다.
길가 돌 틈에서 자란 풀 같은 너희가 나를 욕한단 말인가.
내 너희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모두 교단에서 쫓아내리라.”
씩씩거리며 달려와 눈물까지 흘리며 동정을 호소하는 띳사에게 부처님이 물으셨다.
“띳사, 멀리서 찾아온 비구를 보고 나아가 맞이하였는가?”
“하지 않았습니다.”
“멀리서 찾아온 비구의 가사와 발우를 받아주었는가?”
“아닙니다.”
“앉을 자리를 펴 주었는가?”
“아닙니다.”
“자리에 앉은 상좌에게 합장하고 절하였는가?”
띳사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띳사, 가서 비구들에게 용서를 구하라.”
띳사는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했지만 오랜 세월 익힌 습성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건 다른 비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깔루다이는 지식도 많고 교단 안에서 명망도 높았다.
유능하고 사교성도 뛰어났던 그는 가는 곳마다 신자들에게 환영받았다.
그런데 그는 유난히 음욕이 강해 늘 여인들과 문제를 일으켰다.
정사의 방으로 여인을 불러들이는가 하면
비구니와 가깝게 지내며 자신의 방을 청소시키고 옷을 빨게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부처님께서 꾸짖었지만 그의 습성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부처님의 마부였던 찬나 역시 부처님이 제정한 계율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하였다.
음식과 가사, 방과 침구를 두고도 비구들의 못된 습성들은 문제를 일으켰다.
승가에 보시된 물품은 구족계를 받은 순서에 따라 공평히 분배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작은 차이를 두고 불만을 품고,
탐욕으로 자신의 불만을 키워 승가에 분란을 일으키는 이들이 있었다.
멧띠야와 붐마자까가 그런 이들이었다.
또 좋은 잠자리와 음식을 두고 주먹질을 일삼고,
자기의 뜻을 말보다는 발길질로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다.
빤두까와 로히따까가 그런 이들이었다.
마른 잎에 불씨를 뿌리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가는 곳마다 폭력을 일삼고, 불화와 반복을 조장하였다.
승가의 구성원이 되고도 그에 합당한 위의와 덕행을 갖추지 못한 비구들,
교만과 성욕과 탐욕과 분노에 자신을 맡기는 비구들을 부처님은 엄하게 꾸짖으셨다.
“비구들이여, 살아가는 방법 중에 밥그릇을 들고 얻어먹는 것이 가장 천한 일이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저주할 때 ‘바가지들고 빌어먹을 놈’이라 하지 않는가?
비천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재가자들이 고개를 숙이는 까닭은 보다 수승한 이익을 얻기 위해서이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발우를 들고 집집마다 걸식하는 삶을 선택한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왕의 위협이 두려워서인가?
강도에게 재산을 모두 빼앗겼는가?
빚을 갚을 능력이 없어 도망친 것인가?
전염병이 무서워 고향을 등졌는가?
먹고 살기 힘들어서 출가했는가?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출가자의 삶을 선택한 까닭은 오직 하나이다.
길고 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길을 찾기 위해서이다.
출가자의 삶이 고뇌와 재앙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명심하라.
출가한 이유를 잊어버리고, 출가한 목적을 잊어버리고,
세간에 있을 때의 마음가짐과 다르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하지 않고,
태도를 잘 다스리지 않는이가 있다면
그는 재가자가 누릴 수 있는 행복도 놓치고, 출가자가 얻을 수 있는 행복도 놓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런 이는 화장터에서 시체를 태울 때 쓰는 막대기와 같다.
아래쪽도 시커멓게 그을리고, 위쪽도 시커멓게 그을리고,
가운데는 썩는 시체 위 핏물이 흥건히 배인 그런 막대기와 다름없다.
그런 막대기를 어디에 쓰겠는가?
그런 불결한 막대기는 마을에서 장작으로도 쓰지 않는다.
명심하라.
출가자가 출가자의 삶을 살지 못하면
그는 세간의 행복도 놓치고 출세간의 행복도 놓치는 것이다.”
'마음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처님의 생애 / 제9장 평화와 평등의 가르침 (7) .. 아자따삿뚜의 참회 (0) | 2022.10.28 |
---|---|
부처님의 생애 / 제9장 평화와 평등의 가르침 (6) .. 데와닷따의 반역 (0) | 2022.10.27 |
부처님의 생애 / 제9장 평화와 평등의 가르침 (4) .. 똥통을 지던 니디 (0) | 2022.10.27 |
부처님의 생애 / 제9장 평화와 평등의 가르침 (3) .. 살인자 앙굴리말라 (0) | 2022.10.26 |
부처님의 생애 / 제9장 평화와 평등의 가르침 (2) .. 사리뿟따의 사자후 (0) | 2022.10.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