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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부처님의 생애 / 제9장 평화와 평등의 가르침 (1) .. 시자 아난다

by 우수맘 2022.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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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4 - [마음공부] - 부처님의 생애 / 제8장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 (7) .. 행복과 파멸의 문 & 죽은 아들과 겨자씨

 

부처님의 생애 / 제8장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 (7) .. 행복과 파멸의 문 & 죽은 아들과 겨자씨

2022.10.24 - [마음공부] - 부처님의 생애 / 제8장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 (6) .. 소치는 다니야 부처님의 생애 / 제8장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 (6) .. 소치는 다니야 2022.10.23 - [마음공부] - 부처님의 생애 /

blog.sun-flower.co.kr

 

부처님의 생애

 

9장 평화와 평등의 가르침 (1)

 

시자 아난다

 

부처님 곁에는 가사와 발우를 들어드리고 찬물과 더운물을 준비하는 제자가 늘 있었다.

그 임무를 실천한 첫 번째 시자는 가장 먼저 깨달음을 얻은 안냐따꼰단냐였다.

이후 안냐따꼰단냐는 고향 도나왓투에서 교화를 펼쳤고,

그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났던 이가 여동생 만따니의 아들 뿐나였다.

 

사리뿟따가 그의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가 대론할 만큼 뿐나는 명석하고 설법에 뛰어난 비구였다.

그가 연로한 스승 안냐따꼰단냐를 대신해 부처님을 시봉하였다.

그 후 사까족 왕자 출신인 나가사말라, 꼬살라의 바라문마을 잇차낭갈라에서 머물 때는 나기따,

릿차위 왕자 출신인 수낙캇따, 사리뿟따의 동생인 쭌다, 라자가하의 깃자꾸따에서 머물 때는 사가따,

마가다국의 망꿀에서 머물 때는 우빠와나가 부처님을 시봉하였으며

이외에도 많은 제자들이 그 임무를 감당하였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시문에 탁월한 재능이 있고 학식이 많았던 수낙캇따는 신통을 가르쳐주지 않고,

세상의 기원 등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했을 때 부처님이 침묵한다는 이유로 니간타로 개종하기도 하였다.

그후 수낙캇따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부처님을 비방하였다.

 

고따마는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지 못했고, 거룩한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특출한 지견도 없다.

고따마는 논리적 추리와 말재주만 가졌을 뿐이다.”

 

또 짤리까 인근 산에서 안거할 때였다.

메기야는 시중드느라 수행할 시간이 부족하고, 그래서 자신의 수행이 진척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메기야는 한발이나 나온 입으로 부처님에게 말했다.

부처님, 끼미깔라 강변에 그늘이 짙은 망고나무숲이 있습니다.

그 망고나무숲에서 혼자 수행해보고 싶습니다.”

 

메기야, 나 혼자 있구나. 다른 비구가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라.”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이미 할 일을 마치셨지만 저는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그는 세 번이나 간청하였고, 결국 부처님도 허락하셨다.

 

메기야는 나도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저 숲에서 나오지 않으리라

맹세하고 망고나무숲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초췌한 얼굴로 돌아왔다.

부처님은 그런 메기야를 탓하지 않으셨다.

메기야, 진리의 길을 가고 그 열매를 따도록 너를 차례차례 성숙시켜 줄 다섯 가지 법이 있다.

첫째, 훌륭한 벗을 가까이해야 한다.

둘째, 계율을 온전히 지켜야 한다.

셋째, 좋은 법문을 자주자주 들어야 한다.

넷째,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다섯 째, 예리한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나가사말라 역시 시자의 임무를 수행하며 오점을 남긴 비구였다.

꼬살라를 유행할 때였다.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를 들고 뒤를 따르던 나가사말라가 갈림길이 나오자 부처님께서 말하였다.

 

부처님, 왼쪽 길로 가시지요.”

나가사말라, 오른쪽 길로 가자.”

나가사말라는 왼쪽 길로 가자고 세 번을 청하였고, 부처님은 세 번을 거절하였다.

그러자 그는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자기가 원하던 왼쪽 길로 혼자 가버렸다.

얼마 후 헐레벌떡 돌아온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찢어진 가사에 발우는 깨어지고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였다.

길에서 도적을 만났던 것이다.

 

깨달음을 얻으신 후 20, 기원정사에 머물 던 여든 명의 장로가 모두 부처님이 계시는 향실로 모였다.

어떤 비구는 나를 버려두고 가고, 어떤 비구는 발우와 가사를 땅바닥에 내려놓기도 한 일이 있다.

내 나이도 이제 적지 않다. 항상 나를 따르며 시중 들어줄 한 사람을 선출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장로 사리뿟따가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시중을 들겠습니다.”

사리뿟따, 그만두어라. 그대 또한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가 아닌가.

그대가 머무는 곳에선 법문하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런 그대에게 이 일은 적당치 않다.”

 

장로들이 차례차례 시자가 되길 청했지만 부처님께서 모두 거절하셨다.

마지막으로 아난다에게 차례가 돌아왔다.

그대는 왜 시자가 되길 청하지 않는가?”

부처님께서 물으셨지만 아난다는 침묵하였다.

아난다는 부처님께서 세 차례나 물은 뒤에야 일어나 합장하고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보시 받은 옷을 저에게 주지 않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부처님 발우에 공양 받은 음식을 저에게 주지 않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거처하는 방에서 함께 지내자고 하지 않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초대받은 자리에 저를 데려가지 않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제가 초대받은 자리에 부처님께서 동행해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먼 곳에서 사람이 찾아왔을 때 언제든 데려오도록 허락하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제가 없는 자리에서 하신 법문을 제가 돌아왔을 때 다시 설해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습니다.”

 

훌륭하구나, 아난다. 너의 뜻대로 하리라.”

 

 

 

진리의 어머니 위사카

언젠가 부처님께서 앙가의 밧디야를 방문하셨을 때,

할아버지 멘다까의 심부름으로 부처님을 초청하러 온 일곱 살 어린 소녀가 있었다.

영특했던 소녀의 이름은 위사카였다.

 

꼬살라국의 빠세나디대왕의 요청으로 마가다국 빔비사라대왕은 멘다까의 아들 다난자야를 사께따로 이주시켰고,

위사카는 아버지 다난자야를 따라 사께따로 오게 되었다.

다난자야는 열여섯의 꽃다운 위사카를 사왓티의 부호인 미가라의 아들 뿐나왓다나와 결혼시켰다.

 

백만장자였던 다난자야는 딸을 사왓티로 보내며 오백 대의 수레에 보배를 가득 실어 지참금으로 함께 보냈다.

성대한 결혼식이 치러진 다음이었다.

미가라는 새로 들인 며느리를 자랑하고, 집안의 융성을 기원하기 위해 수행자들을 초대했다.

 

성자들을 초대했으니, 네가 직접 음식을 준비하여라.”

다음 날 아침, 위사카는 사왓티에서의 첫 인사를 위해 비단 휘장을 내리고 곱게 단장하였다.

저희 집에 새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축복해주소서.”

 

시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휘장을 걷던 위사카는 깜짝 놀랐다.

니간타 교도들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도 능청스럽게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길을 피해 위사카는 얼른 휘장을 내렸다.

놀라기는 시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어서 나오너라. 성자들께 인사를 드리지 않고 뭐하느냐?”

아버님, 부끄러움도 모르는 이들에게 저는 예배할 수 없습니다.”

나체 수행자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부잣집 며느리를 들여 좋으시겠다 싶었더니, 집안 망칠 여자를 들이셨군.”

시아버지는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우유를 넣어 요리한 맛있는 음식을 잡숫던 시아버지 곁에서 위사카가 부채질하고 있을 때였다.

걸식하던 비구가 미가라 장자 집을 찾아왔다.

문간에 서서 조용히 기다리는 비구에게 미가라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위사카는 당황했다.

집안의 주인인 시아버지의 지시를 받지 않고는 식은 밥 한 덩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자리를 바꿔 앉으며 눈치를 주었지만 미가라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식사를 계속하였다.

위사카는 부채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비구에게 다가갔다.

 

용서하십시오, 스님. 저희 아버님은 묵은 것만 잡수십니다.”

시아버지는 진노했다.

새로 지은 음식이 아니라 드릴 수 없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묵은 것이란 말 속에는 썩은 것’ ‘배설물이라는 뜻도 있었던 것이다.

미가라는 법정에 재판을 청구했다.

엄청난 지참금을 가지고 온 며느리를 함부로 쫓아낼 수는 없었다.

정당한 사유 없이 며느리를 쫒아내면 지참금의 배를 물어주어야 했다.

그러나 시부모와 남편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한 며느리는 지참금을 돌려주지 않고 쫓아낼 권리가 있었다.

 

사왓티의 저명한 바라문 여덟 명 앞에서 위사카는 해명하였다.

묵은 것만 잡수신다고 말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시아버님을 모욕한 말이 아닙니다.

시아버님은 걸식을 위해 비구가 문전에 서 있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현재 누리는 복록은 모두 과거에 지은 공덕의 결과입니다.

시아버님은 과거에 지은 복록으로 맛있는 음식을 드시면서

새롭게 복덕을 쌓을 생각은 추호도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묵은 것만 잡수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법정의 판결은 내려졌다.

위사카의 언행은 며느리를 쫓아낼 사유가 되지 못한다.

며느리를 돌려보내려면 미가라는 지참금의 곱을 반환하라.’

 

집으로 돌아온 미가라는 방문을 닫아버렸다.

방문 앞에 위사카가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

법정까지 찾아가 잘잘못을 가린 것은 행여 잘못이 있어 쫓겨났겠지하는 오명을 쓸까 두려워서입니다.

이제 저의 결백이 밝혀졌으니 저 스스로 이 집에서 나가겠습니다.”

 

위사카는 하인들을 불러 수레를 준비시키고 아버지 집에서 가져온 보배를 다시 싣게 하였다.

타고 온 가마에 오르는 위사카의 옷자락을 미가라가 붙잡았다.

들어온 보배가 나가는 것도 아까웠지만 가만히 있을 다난자야가 아니었다.

법정의 판결에 따라 지참금만큼 자신의 재산을 덜어주면 자신은 알거지나 다름없었다.

 

아가, 내가 잘못했다. 나를 용서해다오.”

저는 부처님과 스님들을 뵙지 않고는 하루도 지낼 수 없습니다.

제가 원할 때 언제든지 부처님과 스님들을 초청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면 친정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은 위사카는 다음 날 당당히 부처님과 비구들을 집으로 초청하였다.

이번에는 시아버지가 휘장을 내려버렸다.

비구들을 존경하지 않을뿐더러 조금도 고개를 숙일줄 모르는 며느리가 못마땅했다.

공양이 끝나고 부처님의 설법이 시작되었다.

휘장 너머로 들리는 부처님의 설법은 가슴을 울렸다.

자기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던 미가라는 법문이 끝날 무렵 휘장을 걷고 나와 머리를 조아렸다.

 

세존이시여, 이토록 위대한 분이시라는 걸 미처 몰랐습니다.

이토록 제가 어리석은 줄 미처 몰랐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소서. 부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저 미가라가 목숨을 다하는 날까지 삼보를 공경하는 우바새가 되겠습니다.”

 

시아버지인 미가라가 며느리에게 공손히 합장하였다.

진리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게 한 너는 나의 어머니이다.”

미가라는 그날부터 며느리를 나의 어머니라 부르며 존경하였고, 집안의 재산권을 모두 위임하였다.

 

사람들은 위사카를 미가라의 어머니라 불렀고,

교단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그를 승가 대중도 존경해 어머니 위사카라 불렀다.

늘 삼보에 대한 공경심을 잃지 않았던 위사카는 언젠가 부처님 앞에서 간청하였다.

 

저에게 여덟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부처님, 사왓티에 머무는 모든 비구들께 제가 첫 번째 공양을 올리도록 허락하소서.

부처님, 사왓티를 찾는 모든 스님들에게 제가 첫 번째 공양을 올리도록 허락하소서.

부처님, 사왓티를 떠나는 모든 스님들에게 제가 마지막 공양을 올리도록 허락하소서.

부처님, 사왓티에서 병을 앓는 스님들의 공양을 모두 제가 올리도록 허락하소서.

부처님, 사왓티에서 병을 간호하는 스님들의 공양을 모두 제가 올리도록 허락하소서.

부처님, 사왓티에서 병을 앓는 스님들의 약을 모두 제가 올리도록 허락하소서.

부처님, 사왓티에 머무는 스님들에게 제가 아침마다 죽을 올리도록 허락하소서.

부처님, 사왓티에 머무는 모든 비구들에게 제가 목욕 가사를 보시하도록 허락하소서.”

 

나날이 가세가 번창한 위사카는 이후 막대한 자금을 들여 천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대규모 정사를 건립하였다.

그리고 그 정사를 부처님 교단에 기증하였다.

사왓티 동쪽 성문 밖에 위치한 그 정사를 사람들은 동원정사라고도 부르고, 녹자모강당이라고도 불렀다.

굳건한 신심과 아름다운 선행 그리고 빛나는 지혜로 칭송받은 우바이는 위사카만이 아니었다.

 

위사카처럼 개종을 강요하는 시집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결국 시댁 식구 모두를 삼보에 귀의시킨 수닷따 장자의 딸 쭐라수밧다,

남편의 구박과 살해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한결같이 여래. 응공. 정변지께 귀의합니다.”를 되뇌었던 다난쟈니,

병들어 죽어가는 비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살을 베어 먹인 와라나시의 숩삐야와

마하세나장자의 아내, 설법을 잘 했던 앙가자,

늘 조용히 정사를 찾아 주변을 청소하고 허물어진 곳을 수리했던 위말라,

승가를 받들고 외호한 우바이들의 정성은 눈물겨웠다.

그들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승가를 받들었고, 겸양과 헌신으로 승가의 세심한 곳까지 보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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